지역사회발전을위한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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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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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와이인구명예회장

한국동란의 와중에서 군입대를 계기로 건설과 인연을 맺게 된 이인구 명예회장은 미육군 공병학교 시절 건설전반에 관한 실무지식을 얻은 뒤 한국공병의 현대화를 통해서 한국건설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그는 결단이 빠르고 과제에 대한 수행능력이 뛰어났다. 그러한 그의 능력은 위기상황에서 특히 빛을 발휘해 왔는데 한국동란에 학생의 신분으로 과감히 학도병으로 참전한 일이라든지 불가능해 보이던 각종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일 등에서도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군 장교 재직시 국토건설계획 수립과 조국근대화 물결의 중심에 서서 경부고속도로 및 각종 기간산업공사 추진의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
이인구 명예회장의 군생활이 낙후된 한국건설의 현대화에 기여한 것이었다면 계룡건설 설립 후에는 지역경제 발전과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건설협회 충남도지부장 재직시나 상공회의소 회장 재직시 그는 낙후된 지역경제의 재건을 목표로 과단성 있는 결정을 토대로 지역경제의 부흥을 꾀했는데, 일례로 건설협회장 재직시 오랫동안 고질적 문제가 되어왔던 건설업체간 이권분쟁을 말끔히 해결하는 뛰어난 조정능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내적으로는 계룡건설 합자회사를 성장시킴으로써 대전지역의 경제적 교두보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무엇보다 이명예회장은 남이 할 수 없다고 포기한 사업이나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주요한 사업에서 남다른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지역민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왔다.

지역발전의또다른길정치입문

1988년 초, 이인구 명예회장은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것은 당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김종필 총재로부터 정치입문 권유를 받은 것이었다. 1988년은, 이인구 명예회장이 18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계룡건설을 창업하여 다시 18년이 되던 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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